007은 첩보영화의 아이콘으로 기상천외한 아이템, 제임스 본드와 섹시한 본드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동안 시리즈가 침체기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낡아버렸다. 007 시리즈가 침체기에 빠져있을 때, 첩보물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이 본 시리즈이다.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그리고 외전인 본 레거시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기존 첩보물과 사뭇 달랐다. 본 시리즈는 기상천외한 아이템과 총싸움 대신 스마트한 두뇌와 주변 지형물, 사물을 이용한 실전 액션을 무기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맷 데이먼의 암울하지만 무덤덤한 연기가 오히려 제이슨 본을 인간미(인간미라기 보다 짠함)가 느껴지는 최고의 스파이 캐릭터로 만들었다.
<국가 권려의 희생양>
보통 시리즈 물은 1-2-3편으로 갈 수록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가 많은 편인데, 본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도 증가한다. 본 레거시는 제외...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다시 맞추기 위해 CIA와 최후의 한 판을 벌인다. 유럽을 배경으로 시작한 스파이물이 본고장인 뉴욕에서 여정을 마치게 된다.
<괴도 루팡처럼 지붕과 지붕을, 집과 집을 뛰어넘는 제이슨 본>
액션신은 뭐라 나무랄 곳이 없다. 모나코에서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는 추격전을 펼친다. 데슈와의 격투장면은 "이것이 제이슨 본이다"라고 말한다. 실전 격투의 리얼함을 살리는 동시에 화려한 면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특히 강렬한 핸드헬드 기법으로 액션의 현장감을 극대화시켰는데 3편에서도 이를 잘 활용했다. (사람에 따라 조금의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핸드헬드 기법을 활용한 국내영화로는 쉬리가 있다) 핸드헬드 기법은 실제 영화 속 액션신에서 상황을 중계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영화에 사실감을 불어넣는다. 아무리 그래도 본 시리즈를 대표하는 액션은 자동차 씬이다. 자동차 액션씬만 따로 찍는 감독이 있을 정도로 전문화되어있다. 뉴욕에서 자동차 추격씬에서 긴장감은 최고조를 찍는다. 때로는 일부로 추돌하며 상대에게 타격을 입힌다. 트랜스포머같은 폭발씬은 없지만, 핸드헬드 촬영기법은 강철끼리 부딫히는 파열음과 자동차의 스피디함과 어우러져 폭발적 액션 미장센을 보여준다.
<냉정한 영화 속에서 나오는 유일하게 인간미 느껴지는 장면>
한편 본에 대해 관객들이 신선함을 느꼈던 것은 그가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고뇌하는 신개념 스파이였기 때문이다. 스파이는 조국에 충성하여 목숨을 내놓고 은밀한 작업을 한다. 하지만 본은 그를 최고의 스파이로 만든 미국과 CIA에 대항하는 스파이다. 혼란스러운 기억의 파편 속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치료하기 위해 기억을 찾는다. 기억을 찾는 과정 속에서 그의 조국과 맞서게 된다. 조국에 충성해야하는 스파이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억을 찾는 것만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는 저항한다. 정체성에 고통받는 스파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세뇌된 스파이로서 본인이 한 일에 대한 죄책감은 관객들의 동정심을 한층 강화한다.
<워털루 역에서 촬영 중인 맷 데이먼과 감독 폴 그린그래스>
결국 본과 CIA의 싸움은 개인과 국가의 충돌로 대변할 수 있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되고 강한 시스템을 가진 국가가 된다. 국가와 개인이 밸런스를 잘 맞춘다면 시스템은 원활히 작동한다.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면 개인은 국가를 통해 외부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국가를 개인의 상위개념으로 보아 밑도 끝도 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밸런스가 깨져버린 것이다. 시스템은 국민을 위한, 개인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으로 거듭난다. 스스로 생장하기 위해 국가의 본 목적인 휴머니즘마저 삼켜버리고 구성원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인,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가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영화 막판 "너는 날 왜 죽여야 하는지 아나? 저들이 만든 우리의 모습을 봐." 라는 본의 말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 레거시의 참패를 씻기 위한 의지가 느껴지는 포스터>
PS. 2016년에 새로운 본시리즈인 제이슨 본이 개봉한다.
PS2. 맷 데이먼이 돌아오고 감독인 폴 그린그래스도 돌아왔다.
PS3. 본 얼티메이텀이 7.14 재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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