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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정글북(The jungle book), 너 자신을 알라

by Cappuccino as ordered 2016. 6. 13.

정글북이 개봉했고 바로 보러갔다. 이야기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 진부할 수도 있는데, 북미흥행이 순조로우며 로튼토마토 지수도 높은 영화였기 때문에 기대했다. 스토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작의 스토리를 잘 따라가고 있는데, 잘 알려진 만큼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관건이었다. 존 파브로 감독은 이야기에 충실하며 뮤지컬 요소를 넣어 디즈니만의 색채를 만들어냈다. 

<곰탱이와 친구먹은 인간 꼬마>

정글북이 주목받은 것은 짜임새있는 스토리 텔링뿐만 아니라 CG도 한몫했다. CG혁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섬세한 CG캐릭터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아바타 이후의 영상혁명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주인공 모글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CG였기 때문이다. 아바타처럼 몽환적인 외계섬은 아니지만, 지구의 정글을 정말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전체적으로 CG기술을 통해 영화의 영상미를 강조했는데, 아름다운 정글을 보여주기 위한 풀샷이 많았다. 미장센을 정글 CG로 꽉꽉 채워 관객들의 눈에게 어필했는데 인공적 정글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관객들에게 보낸 것 같다. (일반적으로 CG에 강점이 있는 블록버스터들은 미장센을 CG로 꽉꽉 채운 물량공세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리는 측면이 크다) 

<꽉찬 돌직구가 아니라 CG로 꽉찬 화면>

생명을 부여받은 정글북의 동물들은 각자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늑대들은 도구를 쓰지 않고 정글의 법칙을 준수한다. 코끼리는 정글의 창조주로 모든 동물들에게 신처럼 추앙을 받는다. 뱀은 그녀의 교묘하고 약은 방식으로 모글리를 괴롭힌다. 마지막으로 호랑이 쉬어칸은 굉장히 적대적이며 호전적이다. 정글의 폭군으로서 모든 짐승들(코끼리 제외)의 두려움의 대상으로 군림한다.

<섹시한 목소리의 폭력고양이. 혹시 한국 영화 대호의 호랑이와 형제...?>

그렇다면 모글리는? 그는 인간의 자식이다. 늑대 무리에서 자라 늑대의 정신을 이어받았지만, 육체적으로 늑대가 될 수 없다. 늑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늑대들의 방식으로 훌륭한 늑대가 되지 못한 그는 맞지 않는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쉬어칸의 위협을 피해 정글에서 나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심지어 정글에서 탈출도 쉽지 않았는데, 어느덧 인간마을에 다달아 그를 키워준 늑대무리가 큰 위협에 빠진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간다. 그 때, 인간의 무기인 불꽃으로 쉬어칸과 상대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뮤지컬을 하는 원숭이들>

그는 분명히 인간이다. 늑대의 정신을 이어받은 인간 모글리는, 그 자체로 굉장히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다. 위협에서 그는 조력자 흑표범의 도움을 받아 자기의 본질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인정한다. 그리고 모글리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쉬어칸과 맞선다.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세상과 맞설 수 없지만, 자신이 가진 것으로 세상과 대적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든 것이다. 모글리는 "I am Mowgli. This is my home!" 이라는 대사로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히 선언한다. 이 대사가 관객을 울컥하게 했던 이유는(사실은 내가 울컥했다) 아직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관객들로 하여금 본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혼란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싶은 욕망과 의지를 모두가 갖고 있기 때문에  모글리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꼬마와 육식동물 칭구칭구>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역사가 있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요약하기 힘들다. 더구나 인생은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파악이 있어야, 본인의 강점과 약점을 알 수 있고 한 발자국 더 도약할 수 있다. 정글북은, 모글리는 그런 점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S.  정글북2가 제작된다고 한다. 

PS2. 쌍둥이(?) 레전드 오브 타잔이 개봉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인가보다

PS3. 놀랍게도 인도에는 오랑우탄이 없다고 한다.